번역을 맡길 때 ‘잘 부탁드립니다. 꼭 먼저 플레이 한번 해보시고 번역을 시작해주세요’
라고 게임 빌드를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이틀 뒤에 똑같은 메일이 온 거예요.
펑펑 울었다.
그때는 음악도 없을 때였어요.

기사 본문에서 인용.

올해 1월, 한국의 1인 개발자 소미SOMI가 공개한 신작 ‘미제사건을 끝내야 하니까’는 최근 스팀에서 5천 건이 넘는 압도적인 긍정 리뷰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게임의 시스템, 음향, 스토리가 모두 호평을 받는 가운데 몇몇 리뷰에서는 ‘감동적이다’ ‘공감했다’ ‘위로받았다’와 같은 표현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나있었다.

‘미제사건을 끝내야 하니까’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대화 로그를 탐색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들의 회화 속 등장하는 핵심 단어들을 태그로 지정하고, 이를 조합하여 새로운 대화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게 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시스템은, 마치 실제 수사관이 된 것처럼 플레이어를 몰입하게 만드는 동시에,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선을 만나게 한다.

대한민국 부산에서 20년 가까이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소미는, 지난 10년간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로 구성된 ‘죄책감 3부작’을 비롯해 6개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아온 그가, 이번에는 “완전히 자신과 분리된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는 발언은 ‘미제사건을 끝내야 하니까’를 즐긴 유저들 사이에서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금일 SKOOTA에서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디 크리에이터 소미 본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작품 제작과 관련된 비화와 그 속에 담긴 생각 등, 그의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라면 무릇 궁금해할 부분에 대해, 제작자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SOMI(소미)

2014년『RABBIT HOLE 3D』로 게임 개발 데뷔
대표작: 죄책감 3부작『레플리카』 (2016)『리갈 던전』(2019) 『더 웨이크』(2020)
최신작: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2024)
2016년 인디스트림 페스티벌 수상
2020년 인디 아레나 부스 ‘베스트 스토리 게임상’ 수상
2024년 A MAZE./Berlin 2024 대상 수상
BitSummit Drift ‘우수게임디자인상’ 수상
BIC Fest 2024 ‘심사위원상’ ‘소셜임팩트상’ 수상 등,
수상 경력 다수

현재 법조계 종사자로서 1인 개발자 활동 병행


20년차 법조인, 10년차 게임개발자 소미SOMI「우연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게임 개발」

――최근에 한국과 더불어 일본에서도 가장 큰 화제를 부르고 계시는 인디게임의 유명 개발자 소미SOMI님을 모셨습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SOMI: 일단 유명하다는 말씀은 전혀 저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요. 저는 이제 부산에서 대한민국 부산에서 혼자서 외롭게 인디 게임을 약 10년간 만들고 있는 소미SOMI라고 합니다. 2014년도에 『RABBIT HOLE 3D』라는 작품을 출시한 이후로 지금까지 6개의 작품을 출시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레플리카』 (2016)『리갈 던전』(2019) 『더 웨이크』(2020)로 구성되어 있는 죄책감 3부작이 있고요. 그리고 올해 1월달에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2024)라는 제목으로 최신작을 출시해서 한창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전업 개발자가 아닌, 본업과 함께 1인 개발을 병행하시는 걸로도 알려져있죠. 말씀하신대로 벌써 10년째 게임을 제작 중이신데, 게임 개발에 들어서기 전에는 어떤 창작활동을 하셨나요?

SOMI: 대학 시절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단편소설을 써서 그거를 이제 문학작품 공모전 같은 곳에 내는 등, 소설가로서 등단을 하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데뷔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경험이 있구요. 그 전에는 고등학교 때는 이제 좀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 가지고 만화를 열심히 좀 따라 그리고 했었던 것 같아요.

――소설가 혹은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대학교 시절에서 지금의 게임 개발에 이르게 된 경위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SOMI: 기본적으로는 대학에서 이제 법학을 전공을 해서 지금도 이제 법 관련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구요. 지금 직장에서는 거의 한 20년 정도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좀 일상생활에서 챗바퀴 굴러가는 회사 생활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만의 창작 활동, 또 나만의 창작물 혹은 창의적인 활동들이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또 내가 가진 생각들을 혹은 스트레스를 또 배출할 수 있는 또 통로가 된다라는 생각에 프로그래밍이라는 거를 혼자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를 통해 앱을 만들어서 앱스토어에 출시를 하고 하는 활동들을 했었습니다. 타로 카드로 점을 보는 앱이라든지, 아니면은 1년 편지라고 해서 뭐 1년 뒤에 이메일을 보내주는 앱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만들었었죠.

――이야기를 여쭌 느낌으로는 어떤 하나에 얽매이기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시도하신 걸로 느껴지네요. 어떻게 하다가 게임 개발에 정착하시게 된 걸까요?

SOMI: 프로그래밍을 혼자서 배우고 앱을 만들어서 또 판매도 해보다가 다음 번 작품은 뭘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휴대전화에서 당시에 굉장히 유명했던 『슈퍼 헥사곤』(2012)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슈퍼 헥사곤이라는 작품이 정말 잘 만든 인디게임인데, 그때 당시에는 인디게임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전 또 게임을 그렇게 즐겨하지는 않는 편이어서 그 게임을 해보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를 모르니까 그때는 ‘이거 조금만 만들면은 이거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그때 만들었던 게 『RABBIT HOLE 3D』였고요.

첫 게임 제작에 영향을 미친 당시의 인기게임『슈퍼 헥사곤』(2012)

――지금의 소미님이RABBIT HOLE 3D와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만든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갑니다.(웃음)

SOMI: 저는 지금도 리듬 게임에 대한 강한 그 열망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늘 이제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하고 싶나요? 라고 물었을 때 다음 작품은 정말 제대로 된 리듬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고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거기다 저는 칩튠Chiptune도 굉장히 좋아해 가지고 칩튠으로 이런 슈퍼 헥사곤을 뛰어넘는 멋진 리듬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게 또 하나의 작은 목표이기도 합니다.

――어플을 만드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만드신 앱이 한국 앱스토어 3위까지 올랐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동기부여는 앱 개발 쪽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게임 개발로 이행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SOMI: 굉장히 우연한 것 같아요. 앱을 만들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정말 우연적인 계기였고. 그거에 대해서 막 또 얘기할 또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앱을 만들다가 게임으로 넘어오게 된 것도 사실 이제 다음 앱을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이 정도로 품을 안 들인 것 같은 게임이 이만큼 대단한 반응을 얻는다고? 그러면 나도? 라는 정도의 시도가 처음에 시작의 계기였죠. 그러면서 이제 점점 ‘아, 게임을 만든다는 게 정말 어려운 과정이고 또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게임도 엄청난 연구와 노력의 성과인 거구나’라는 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 또 시간이 많이 걸렸었죠.

형식에서 메시지로「게임에 정치를 가져오지 마라」

소미의 대표작 ‘죄책감 3부작’ 중 두 작품인 『REPLICA』(2016)、『LEGAL DUNGEON』(2019)의 트레일러 영상.

――’호기심’이라는 말씀하셔서 말인데,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첫 게임을 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이후로 이어진 소미 님의 대표작 ‘죄책감 3부작’에는 어떤 호기심이 작용한 건가요.

SOMI: 『RABBIT HOLE 3D』를 만들고 그리고 나서 이제 『RETSNOM』(2015)이라는 이제 2d 퍼즐 플랫포머 게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2d 게임들, 예를 들면 픽셀 아트 안에 조금씩 서사를 넣는 그런 게임들의 점점 방향 설정이 좀 잡혀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그러다가 『레플리카』(2016)*를 만들 때는, 『RETSNOM』을 출시하고 나서 ‘다음 게임은 어떤 걸 만들지’라고 생각을 할 때 휴대전화 화면을 픽셀 아트로 만들어 놓은 그 아트 하나를 봤어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던 과정에서 발견한 그 이미지 하나가 너무 뇌리에 박혀서, ‘와 그냥 화면 전체를 핸드폰 화면으로 만든 게임이 있나’ 라고 찾아봤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게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화면 자체를 이렇게 픽셀 아트로 화면 전체에 나타내면 화면이 너무 이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에 접근을 했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레플리카는 형식을 먼저 만든 게임이었죠. 핸드폰 화면을 게임 안에 그대로 구성해보자라는 생각에서 핸드폰 화면, 그리고 그 안에서 메세지 앱이 돌아가는 구동 과정, 사진, 여러 가지 앱들이 들어가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고 나서 이제 이야기를 뒤늦게 입히는 작업이 진행이 됐었구요. 추가로, 처음에 레플리카에 넣었던 이야기는 원래 지금 출시되어 있는 버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죄책감3부작의 첫번째 작품.

――죄책감3부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플리카’가 형식부터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건 충격이네요. 이야기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는 말씀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SOMI: 처음에는 『재능 있는 리플리』(1955)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넣으려고 했었어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이제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톰이라는 주인공이, 대부호의 아들인 디키에게 접근해서 디키를 죽이고 마치 자신이 디키인 것처럼 행세하는, 그게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거든요. 이제 톰이 디키라는 인물을 죽인 직후에 디키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디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디키의 친구들에게 ‘어떻게 살인사건이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것인가?’ 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친구들에게 또 소개도 시켜주고 플레이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 중에, 2016년도 당시 사건이 생겨요. 이제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그리고 그 전에 탄핵을 위한 집회가 있었거든요.

또 그 전에 이제 각종 언론 출판 방송에 대한 탄압과 여러 가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든지. 국가의 분위기가 전체주의적으로 굉장히 많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다른 시민들이 이제 거리에 나와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서 좀 부끄럽게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나도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러면 이 게임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완전히 바꾸게 되었죠. 그것이 지금의 레플리카를 있게 했고, 또 죄책감 3부작이 시작된 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2016년도 말씀이군요. 이 이야기를 듣는 일본분들도 워낙에 큰 사건이니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당시의 사건이 소미 님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걸로 이해했습니다.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 있어서 사회문제를 다룬다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반감이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에 있어서는 당시 실제로 어떻게 느끼셨나요?

SOMI: 당시에 이제 게임을 통해서 사회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고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요. 정치 문제라든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작품을 저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제가 정말 어렸을 때, 대통령들이 나와서 서로 배틀을 하는, 이제 그런 약간 패러디 형식의 게임은 있었지만 그 이후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라고 기억하거든요. 게임이라는 매체, 게임이라는 이 미디어를 다루는 접근 방식 자체를, 하나의 예술매체로서 인정을 하지 않는 그 분위기가 오히려 게임이라는 장르를 굉장히 협소하게 만들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들고요.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게임은 재밌어야 돼’ ‘게임은 즐거움을 줘야지’ 라는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까, 매체의 특성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경로를 애초부터 차단시키는 경우가 있다고도 생각을 해요. 최근에 조금씩 흐름이 바뀌는 이유도, 게임이 어느 정도 예술 장르로서 자리를 잡은 측면도 있지만, 게임은 즐거워야 한다는 이 체제 자체를 그대로 고수를 하면서도 즐거움이라는 취향이 사람들마다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핑퐁 게임 같은 정말 단순한 게임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서사 구조의 변화와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를 해부하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는 것에 대한 인식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층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접근을 했을 때도 충분히 내 게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인식한 젊은 세대들이,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추가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시각 자체가, 흔히들 임팩트 게임 아니면은 인플루언서 게임 혹은 시리어스 게임이라고 하는 게임을 하나의 또 장르로써 좀 바라보는 또 관점도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게임들을 별도로 모아서 어워드가 생기고, 상을 주고… 그런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어느 정도 많이 만들어져 있다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런 게임들이 마케팅적으로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는 것 같구요. 이런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서, 좀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게임 이벤트 BIC Festival에서, 2년 연속 소셜임팩트 상을 거머쥔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정말 말씀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디 게임을 포함해 다양한 게임들이 나오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뒷받침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격동기 속에서 살아가는 소미 님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에 정치를 가져오지 말라’라는 말씀은 여전히 듣는 편인가요?

SOMI: 그럼요. ‘결국은 정치질 하려고 만든 게임’이라고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리뷰에도 적혀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한참 이제 그 한국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생기고 할 때 페미니즘 탄압을 위한 사상 검증에 대해서도 강하게 좀 입장문을 냈던 터라 게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지탄의 대상이 됐었죠. 그래서 악플도 많이 받았고, 게임이 나오면 지금도 미제사건 게임과 관련돼서 전체적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가보면 2가지 흐름이 있어요.

하나는 이거 ‘페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라고 해서, ‘무조건 믿고 거르자’ ‘절대 사면 안 돼’ 뭐 이런 이제 시선들이 있고요. 또 하나는 ‘이 사람이 그래도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의 게임은 믿고 해도 되는 안전한 게임이다’라는 또 그런 사람들이 있죠. 쉽게말해 아직까지도 게임에서 뭔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관점, 사상, 철학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터부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지금까지도 계속 겪고 있는 일이고요.

――관련 인터뷰 중에서 ’당신은 최고의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평가를 너무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웃음)

SOMI: 되려고 노력하죠. 공부를 하고 많이 배워야 하는 일이다보니까.

게임에서 지우기로 한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완전한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의 출발을 알린 소미 본인의 트윗.

――본 주제로 넘어가서,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는 앞서 말한 죄책감 3부작과는 달리 ‘얼굴이 있는 게임으로 만들겠다’라고 언급하신 걸 접한 바 있습니다. ‘얼굴 있는 게임’이란 게 어떤 의미인가요?

SOMI: 지금까지 이제 죄책감 3부작에는 인물의 일러스트가 전혀 없었어요. 이제 인물, 캐릭터를 알게 되는 그 과정에서 이 대사를 읽잖아요. 그 대사를 통해서 ‘아 이 인물은 대충 얼굴이 이렇게 생겼겠구나’ ‘나이대는 어느 정도겠구나’ 뭐 이런 거를 이제 추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을 했었죠. 그러다가 이제 우연히 『LEGAL DUNGEON』(2019)의 이제 그 일본어가 이제 형편없는 번역이 되어 있는 상태로 출시가 되게 됐어요. 리갈 던전의 그 형편없는 번역에도 불구하고, 그노시아를 만든 쁘띠테포토의 시고토상 코토리상 두 분께서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는데, 그노시아의 출시를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고쳐주시고 거기에 더해서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 일러스트와 함께 스위치 버전이 판매가 됐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 달랐던 거죠. 리갈 던전의 초기 버전과는 사실 일러스트 한 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인데. 번역의 문제는 스위치 버전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해결된 문제였고, 일러스트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좀 온전히 느낀다는 거를 당시에 좀 알 수가 있었어요. 그림이 있다는 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측면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인물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것을 좀 그때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노시아는 최근 애니화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SOMI: 그러니까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언젠가 소미 님의 작품도 애니화되는 걸 기대해봐도 될까요?

SOMI: 그렇게 되면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LEGAL DUNGEON』같은 작품을 애니라든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면 그만한 영광이 있을까요.

――앞서 말한 답변에서, ‘그림이 있다는 게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리갈 던전 이전까지는 일러스트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셨던 건가요?

SOMI: 아뇨. 안 좋다라는 생각은 아니었고요. 그러니까 레플리카를 만들 때도 리갈 던전을 만들 때도 여기서 최적의 이미지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예를 들면…

음, 레플리카는 사실상 인물이 필요가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인물에 대한 추상성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라는 걸 나타내고 싶었거요. 혹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상황 자체를 더 부각하거나, 아니면은 핸드폰의 기능에 좀 더 집착한 그런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했던 거 같아요. 또 하나인 리갈던전 같은 경우에는 대화 장면에서 계급장이 이제 인물을 대체하면서 나와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안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로서의 기능을 하는 인간들이란 걸 좀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또, 리갈던전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의 성별도 거의 나오지 않거든요. 엔딩 직전까지도 성별을 알 수가 없어요. 그런 모호함이 또 사람들에게 그런 제약이 없는 상상력을 줄 수 있다, 그런 측면도 좀 고려를 했던 거 같네요.

――그렇군요. 코토리 상의 일러스트를 통해서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알게 되었고, 미제사건에 이르러서는 ‘얼굴이 있는 게임을 만들자’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신 거군요.

SOMI: 욕심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얼굴 있는 자식들을 제대로 보고 만들.자 좀 그런 개인적인 욕심 네, 뭐 그런 것도 있었죠.

――얼굴이 없는 자식들을 만들어내다가, 미제사건에 들어서서 얼굴이 있는 자식을 만들어내신 거네요. 그런 마음가짐이 실제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SOMI: 얼굴이 있는 자식을 만드는 거는 이것도 되게 좀 특이하면서도, 나중에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후에 게임을 만들고 나서 ‘아 이런 차이가 있었네’라고 뒤늦게 좀 깨닫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앞서 설명한 죄책감 3부작과는 달리, 미제사건은 내용을 먼저 만들었어요. 죄책감 3부작은 다 형식을 먼저 만들었었거든요. 형식을 먼저 만들고 그 형식과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입혀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게임이 나왔었고, 미제 사건은 이야기를 통째로 먼저 만들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형식을 만들었던 거라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조금 더 인물의 모습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좀 그런 생각도 들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이전에 제작한 작품과는 달리, 내용을 먼저 만드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에 대해서 한 가지 여쭙자면, 과거 인터뷰에서 ‘게임에 있어서 메시지는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게임은 메시지보다 아름답고 또 동시에 중요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SOMI: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완벽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죄책감 3부작을 만들면서 느꼈던 거는,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를 계속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느낀 당시의 죄책감, 내가 이 사회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너희도 똑같은 감정을 한번 느껴봐 봐’ ‘너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고 싶어’ 와 같은. 이 상황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이 게임을 활용하는 측면들이 굉장히 강했고, 마지막에 더 웨이크를 만들면서 그게 좀 가장 증폭됐던 것 같아요.

23년 5월에 언급했던 그 ‘괴물같은 게임’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것은 정말 온전히 제 경험만 들어가 있는 제 이야기거든요. 따라서 그것이 제 어떤 트라우마나 기저에 깔려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작가한테 너무 의존하는 게임이 돼버렸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게임을 만들 때는 ‘완전한 창작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따라서 정말 허구의 세계, 그러면은 이제 그 안에 들어있는 인물들도 저랑은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이 되겠죠. 그 안에 있는 에피소드, 그 안에서 나온 감정들도 내가 사회에서 혹은 지금의 현실에서 얻은 경험들과는 오히려 동떨어졌다고 느낄 정도로. 낯선 공간, 이거를 좀 만들어 보고 싶다. 그래서 소미라는 사람이 빠져도 이게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어 있을 수 있도록, 스스로 좀 완벽한 세계를 한번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추상적으로 가졌었고요.

네, 그런 생각과 함께 이제 주제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같이 얘기를 하고자 했었죠. 그래서 게임에 대한 접근이나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이 제가 기존의 제 게임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한 반작용으로 좀 나온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게임은 이래야 돼, 이런 거에 대한 어떤 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다기보다는 이전까지는 이런 게임들을 만들었었으니까 한번 이번에는 요런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어 볼까. 요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도 성립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따듯한 애정과 인간미로 충만한 세계’라는 게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또 그러한 세계를 통해 모두가 감동을 느끼고 마음이 따듯해졌다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많지 않나 싶고요.

SOMI: 씁쓸한 측면이 있죠.(웃음)

――자신이 없는 세계가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와 공감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하셨나요? 아니면 결과를 보고 의외였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셨나요?

SOMI: 이거는, ‘예상했다’와 ‘예상하지 못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출시를 앞두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거든요. ‘어떤 날은 이거 완전 초대박 게임인데?’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어떤 날은 ‘이런 재미없는 게임을 누가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이 오가는 중, 제 개발자 친구들이라든지 또 퍼블리셔들한테 이렇게 게임을 보냈을 때 반응들이 다 좋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혼자 자기만족하는 게임을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죠. 근데 추후 이 게임을 번역을 하려고 번역하시는 분들한테 게임을 보냈거든요. 번역을 맡길 때 ‘잘 부탁드립니다. 꼭 먼저 플레이 한번 해보시고 번역을 시작해주세요’라고 하면서 게임 빌드를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이틀 뒤에 똑같은 메일이 온 거예요. 펑펑 울었다. 그때는 음악도 없을 때였어요. 번역하면서 동시에 음악을 만들고 있던 시기여서 그 이메일을 보고 느꼈죠. 야 이거 됐다. 됐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나름의 안심감이라고 할까요. 뭔가 너무 거창한 말일수도 있는데 구원 받았어요.

――되게 인상깊은 이야기네요. 로컬라이즈를 진행 중이던 와중에, 그런 평가를 접하게 되신 거군요. 참고로 이번 인터뷰에서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거 같은데, 미제사건의 경우 어떻게 로컬라이즈를 진행하셨나요?

SOMI: 번역을 잘못 받아서 굉장히 곤란했던 경험도 있거든요. 레플리카 때까지는 제가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번역이 엉망이었어요. 번역이 엉망인 상태에서 출시한 이후에 인기를 얻으면서 팬분들이 하나씩 번역을 해줬었거든요. 그리고 리갈 던전에서는 번역을 제대로 하자고 해서 국내에 있는 번역 업체에 맡겼었는데 영어, 일어, 중국어를 기계 번역보다 더 엉망진창인 번역을 해줘서 형편이 없었죠.

결국은 리갈 던전 같은 경우에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팬분이 번역을 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더 웨이크 때부터는 영어 번역이 거의 표본으로 되어서 다른 언어로 뻗어나가는 구조다 보니까 한영 번역을 하시는 분을 게임 업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국내 문학 작품을 해외로 번역을 하시는 분들을 찾아다녔었죠. 다만 그 중에서 업계 쪽 많은 작품을 하시는 분들은 워낙 바쁘셔서 게임 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으셨는데, 문학 작품 번역을 통해서 문학 번역원 등에서 상을 받았다던가 하는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다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취했죠. 많은 분들이 게임이라고 해서 거절을 하셨는데, 설득의 과정 끝에 지금 같이 작업하는 분을 만났고, 그 분 덕분에 게임이 영어 버전으로도 제대로 표현이 전달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그 분이랑 작업을 하고 있어요. 미제사건도 마찬가지고요.

게임의 번역이 얼마나 정밀한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X의 투고문.
‘게임의 번역이 기계번역 수준이었다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며 미제사건의 번역을 다루고있다.

――번역에 있어서 특히나 신경쓰고 계시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SOMI: 요즘에 유행하는 표현이잖아요. 시적 산문이라고. 시적 산문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느냐. 번역의 과정에서 그걸 신경을 많이 쓰는 측면이 있어요. 또, 번역하는 거랑 지역화하는 거는 굉장히 많이 다른 부분이잖아요. 일본은 지역화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검수하는 과정을 잘 거치도록 노력을 했죠. 이번에도 미제사건의 경우 두 번을 거쳤어요. 일본어를 처음에 번역을 하고, 두번째는 번역인이 아닌, 게임과 일본의 정서 같은 것들을 잘 이해하시는 분에게 다시 또 검수를 받았어요. 그 안에 있는 내용이나 분위기나 또 제목이 어감 차이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캐릭터의 말투나 심지어는 딸의 이름까지. 일본어로 세이카인가요? 세이카라는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한자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그 한자 이름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그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 받지 않는 아이가 될 건지 등.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했었죠.

따라서 저는 번역을 할 때 질문하지 않는 번역가 분들하고는 작업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문장들 하나하나마다 비교가 있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상징체계가 있거든요.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은 출처가 있는 원문이나 아니면 그 안에 나와있는 다른 종류의 매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메시지를 주고받아야지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질문을 많이 하시라고 전달하는 편입니다.

(후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