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하나라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면서, 인디게임 개발과 이벤트 참가를 통해 업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일본 국내의 인디게임 씬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개발이나 이벤트 전시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게도 제 모국인 한국에서는 지금껏 인디게임 이벤트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중, 들려온 한 소식. 인디게임 플랫폼 ‘STOVE’와 그 모회사인 ‘SmileGate’가 서울에서 대규모 인디게임 이벤트 ‘Burning Beaver 2024’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취재를 결심했습니다. 다른 게임 이벤트와는 달리, 서울의 중심부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인디게임 씬의 현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지난 도쿄게임쇼 레포트에 이어, 11월 29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된 버닝비버 2024에서 만난 인상적인 작품과, 그 배경에 있는 한국 인디게임 씬의 특징에 대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포장마차의 분위기가 감도는 회장

이벤트 열리는 DDP의 아트홀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치 스타디움과 같은 개방감이 느껴졌습니다. 높은 천장과 넓직한 공간에 83개의 부스가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고, 각 부스 사이에는 여유로운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올해의 버닝비버는 ‘요리와 셰프’를 테마로 내걸었기에, 각 부스는 포장마차를 이미지한 설계로 되어 있었습니다. 부스 위쪽에는 각 타이틀을 내건 간판이 걸려 있어, 마치 포장마차의 지붕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철제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부스의 공간은 위쪽과 옆이 트여있어, 안에 들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테마는 통일되어 있으면서도, 부스의 커스텀은 각 출전자에게 맡겨져 있어, 분위기의 통일감 속의 공존하는 각 부스의 개성적인 모습이 이벤트 전체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29일은 평일이었기 때문인지, 오전에는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10대에서 20대의 젊은 게이머들이 각 부스를 정성스럽게 돌아보며 게임을 체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시장을 이미지한 활기찬 디자인이면서도, 실제 회장은 차분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비였다고나 할까요.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회장 내에는 일반적인 게임 전시와는 다른 느낌의 기획 전시 공간 “게임 밖의 게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후편에서 소개할『IMAGE ALCHAEOLOGY』『BARC』와 같은 작품이 전시되었고, “어디까지가 비디오게임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기반한 실험적인 시도가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컨트롤러나 키보드 조작에서 벗어나, 물리적인 장치를 두드리거나 사진을 촬영해 분석하는 등, 현실 세계와 게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줄지어 있어,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회장의 출구 부근에는 ‘스푼’이라고 불리는 포인트를 활용할 수 있는 구역이 존재했습니다. 각 부스에서 게임을 체험하면 QR코드를 통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고, 그것을 사용해 굿즈 추첨이나 점을 보는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방문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진하는 아이디어로서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럼, 이 독특한 공간에서 만난 인상적인 작품들을 차례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6색의 세계에서 엮어내는 30일간의 이야기 -『Time To Live』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2번 부스에 전시되어 있던 『Time To Live』의 선명한 16색 그래픽이었습니다. 1인 개발자 WTFMAN이 만든 이 작품은, 마치 과거의 레트로 명작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회장 내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UI 디자인에서 미니게임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향수를 자아내는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어서, “이런 시대에, 잘도 이런 게임을 만들다니!”라는 놀라움마저 느낄 정도. Steam 공개를 위해 개발 중인 이 게임은 현재 스토어페이지에서 데모 버전을 배포 중이라고 합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게임 플레이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하면 얄짤없이 나오는 게임오버 화면.
사인과 함께 나타나는 로프의 일러스트가 너무 생생해서 무섭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게임의 컨셉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빌딩 옥상에서 만난 자살 지망생 소녀를 구하고, 그 후의 30일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 플레이어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종종 목숨을 끊으려 드는 그녀의 스트레스 관리에 분주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책을 주어 지성을 높이는 등, 육성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스트레스 관리와 함께 진행하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4단계 있는 난이도 중 2번째로 플레이했지만, 순식간에 게임오버가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개발자의 마음이 담긴 한 권의 책자

플레이 후, 개발자와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스에 놓여있던 한 권의 책자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대기 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던 그 책자에는, 개발자가 본 작품에 담은 마음, 영향을 받은 과거 명작에 대한 리스펙트, 그리고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었는지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열정이 담긴 문장에서는,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만들고 싶은 게임을 지금 만들고 있다”는 개발자의 강한 의지와 열정이 전해져 왔습니다.

로컬라이즈에 대한 기대

그래픽과 일러스트는 일본의 서브컬처로부터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한편, 게임 내용은 한국다움을 짙게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템 설명문 등에서 볼 수 있는 지역성과 밈적인 요소에는, 개발자가 ‘좋아하는 것’이 응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보는내내 즐거웠습니다.

일본어, 영어 버전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문화적 요소를 어떻게 언어의 벽을 넘어 전달해 나갈지,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타협하지 않고 만든다”는 인디게임의 자세를 기저에 둔 작품이니만큼, 정식 플레이에 대한 기대를 더해봅니다.

제작자 본인의 지역성이나 밈에 대한 이해도 등,
기호성이 드러나 있는 아이템의 설명문. 이건 도대체 어떻게 번역될 것인가…

귀여움 속에 숨겨진 고난이도의 플레이 -『할로원더밴드』

수많은 부스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눈길을 끄는 부스 디자인.
할로인 컨셉으로 개성이 강했다.

41번 부스에 전시되어 있던 『할로원더밴드』는 3인조 개발자 팀 WhiteKite가 만든 할로윈 테마의 리듬게임입니다. 2025년 발매를 목표로 개발 중인 본작은, 이번 이벤트에서 처음 공개되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SNS에서 화제가 된 이색작

사실 본 작품에 대해서는 SNS를 통해 이전부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독특하고 귀여운 디자인은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켜, 당초 계획에는 없었던 일본어 지원도 결정되었을 정도입니다.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리듬게임이라는 기본 시스템 안에서, 각 에피소드에는 독자적인 스토리, 애니메이션, 음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짜잔 이벤트’라고 불리는 돌발적인 이벤트도 발생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아이디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습니다.

키보드를 사용한 조작 시스템도 특징적이었는데, 왼쪽 노트는 ASD 키, 오른쪽 노트는 JKL 키를 사용하는 방식은 기존의 리듬게임에서는 쉬이 보기 힘든 조작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의외의 어려운 난이도와 매력적인 비주얼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고 의외였던 것은, 게임 난이도의 어려움이었습니다. 배경에서 흐르는 애니메이션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자꾸 보느라 노트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는 컨셉의 캐릭터성과 리듬게임으로서의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개발자들의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첫 출전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

놀랍게도, 이번 버닝비버는 WhiteKite 팀에게 있어 첫 게임 이벤트 참가였다고 합니다. 부스의 구성부터 굿즈,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첫 출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임 이벤트 출전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개발 팀은 앞으로 일본을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 출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할로윈을 테마로 한 작품인 만큼, 내년 할로윈 시즌 출시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의 경계를 넘는 잠재력

본 작품의 매력은, 특정 문화권에 얽매이지 않고 독특한 귀여운 비주얼로 폭넓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점에 있습니다. 특히 할로윈이라는 동서양 막론하고 인기 있는 테마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디게임 씬에서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줄 리듬게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시까지의 시간 동안, 다양한 이벤트에서 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사회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는 퍼즐 어드벤처 -『소희』

’하얗다’라는 의미의 素소와, ‘바라다’라는 의미의 希희가 만나 ‘素希소희’가 된다.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31번 부스에서 만난 『소희』는 팀 ‘아네모네’가 만든 2D 픽셀 그래픽의 퍼즐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STOVE에서 무료 데모 버전을 배포 중이며, 정식 출시도 머지않았다고 합니다.

따뜻한 그래픽에 숨겨진 무거운 테마

너무 일찍 철이 든 소녀 소희가 성인이 된 후, 예기치 못한 임신과 불행한 사고를 마주하고 낙태를 고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따뜻한 느낌의 그래픽과는 대조적으로, 이른 나이의 임신, 낙태, 한부모 가정, 자살과 같은 무거운 테마를 담담하게, 하지만 정성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토록 무거운 테마를 다루는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가 가진 최대의 의문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소희』는 게임성과 주제, 그리고 스토리의 절묘한 밸런스를 멋지게 실현해냄으로서, 그 질문에 훌륭한 답을 제시해보였습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미니게임은 단순한 퍼즐 어드벤처의 요소로서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불안과 절망, 슬픔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서 소희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것에 대한 개발자의 진지한 자세가 느껴지는, 뛰어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 녹아든 감정 표현

플레이 후, 개발자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미니게임을 넣음으로써 게임성을 추구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지쳐버린 몸으로 대학 강의를 듣는 장면이나, 꿈이었던 뮤지컬 배우를 목표로 오디션 준비를 하는 장면 등, 일상의 한 컷으로서의 미니게임을 통해 소희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하는 수법에는 치밀한 계산이 느껴졌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본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금기시되기 쉬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자세입니다. 동시에, 그것을 일상의 일부로서 그려내야 한다는 제약 속에서, 한국 사회의 풍경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소희가 학교 앞 문구점에서 간식을 사 먹는 장면은 저 스스로의 향수를 자아낼 만큼 선명한 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인디게임 씬에서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비교적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본작이 BIC에서 소셜임팩트 상을 수상한 것도, 한국의 인디게임 씬, 나아가 한국 사회가 원하는 콘텐츠의 방향성이 일본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버닝비버의 레포트 – 전편은 여기까지

이벤트 중인 무대. 미니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3개의 작품을 되돌아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던 개발자들의 열정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16색의 제한된 그래픽으로 제작자의 열정을 담아낸 『Time To Live』, 귀여운 비주얼 속에 치밀한 게임성을 숨긴 『할로원더밴드』,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무거운 테마를 담담하게 풀어낸 『소희』까지.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기에 가능한 표현’을 모색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한국 인디게임 씬의 새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버닝비버에서 만난 인상적인 작품과의 만남은, 아직도 계속됩니다. 다음 회에서는, 제가 “이런 형태의 게임도 가능하구나!”라는 놀라움과 발견으로 가득했던 경험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제한함으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모험에서부터, 뜻밖의 디바이스 활용법까지. 세번째 개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작품이 모인 이 버닝비버 2024에서, 저 자신도 플레이하면서 절로 탄성을 지르게 되는 작품과의 만남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부디 그 게임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를 후편에서도 기대해주세요!

(후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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